당 사이트에서의 성경 명칭

기독교성경보통의 기독교 교인들이 들고다니는 성경전서(신구약 모두포함)

히브리성경기독교성경의 구약 부분만을 의미함.

히브리성경 원전히브리어로 쓰여진 (예수가 읽은) , 또는 유대인에 의한 영어번역 성경

기독교성경의 구약은 히브리성경 원전과 순서, 내용이 교묘히 바뀌어 있다. "구약"이라 칭함은, 회당에서 예수가 읽은 히브리성경 원전을 "오래되어 낡아 없어질" 이란 전제가 깔린 표현이다.

예수는 화평을 깨러 온 자

마태복음 5장 9절 예수 산상수훈 7번째 팔복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마태복음 5장 9절 Matthew 5:9

마태복음 5장 복(福)이라는 말은 헬라어(그리스말) 'makarios' 한글번역이다. (신약성경 기록 언어는 히브리어, 영어가 아닌 헬라어)

의미는 영어로 good life, 우리 말로는 "좋은 삶" "멋진 삶" 쯤 되겠다. "복" 이라는 한글번역을 견주어 보면 동양사람인 우리네 생각엔 good life가 약간 다르게 다가온다.

서양사람들이 써 놓은 신약성경을 동양사람인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들 생각하는 방법대로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듯.

복의 대명사 복권

어떤 목사 왈, 복받는다 함은 '행복(幸福)한 삶'이란다.

복을 설명하려고 행복을 끌어들이는, 이름하여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에 빠져 갈팡질팡. 더 이상 무식쟁이 기독교도 이딴 말 듣지 말기로 해요.

현대 사회에서 복(福, blessed)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 복의 대명사 복권 아닐까 싶다.

당첨 후, 복을 받은 결과로서 삶의 많은 변화 가운데 하나는 "돈 많은 사람" 으로 일컬음을 받음이다.

자본(Capital, 돈)이 주인이고 나는 자본의 종인 세상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많은 사람" 그 사람의 삶이 어떨 것인가 그 사람이 가진 돈의 크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럼 당첨 안되면 복을 안받은 건가? 꼭 그런 건만 아니다.

추첨시각까지 "당첨에 대한 기대 심리"가 내 마음 속에 있다.

당첨이 되는 나의 미래가 상상속에 펼쳐진다. 비록, 상상속이긴 해도 흐뭇한 미소가 배어남을 남이 볼세라 애써 숨겨야 한다.

낙첨 확인 시점까지 짧은 기간 나만의 가상 세계에서 누린 멋진 삶을 생각해 보면, 공중에 흩어져 사라진 비록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깝지 않다.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되는 복

나와 아주 가까운 두 사람이 있다. 그 둘은 서로 오해해서 서먹해 하고 있다.

심지어 긴장감이 있음을 알아 차렸다.

내가 절묘한 화술과 진정성을 발휘해 오해를 풀어내 그 둘을 화평케 했다 - peacemaking.

서로에 대한 긴장에서 벗어나 화평을 누리는 그들을 바라 볼 때 들던 내 마음의 상태, 역시 또 다른 복권을 산 셈이다.

마태복음 5장 9절 팔복 peacemaker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되는 복 받는다 예수는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 - 유대교 회당에서 가르침

21세기 현대 기독교도들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예수가 말했으니 당연히 자기들에게 한 말이겠거니,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복 받을 거라는 허망한 생각을 당연시한다.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들에겐 몸에 밴 히브리성경 표현이다. 예수는 유대교도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기독교가 아직 없었는데 멀.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children of the LORD your God)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명기 14장 1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the living God)라 할 것이라
호세아 1장 10절

예수 살아 갈릴리사역 당시, 누가 히브리성경 읽고 공부했겠는가?

회당에서 날짜에 따라 절기에 따라 랍비가 유대인을 상대로 토라(Torah, The Pentateuch, 모세5경)와 네비움(Nevi'im, Prophets 예언서) 그리고 케투빔(Ketuvim, Scriptures, 성문서) 탈무드 미드라쉬등등 강습한다.

그런데 예수가 말한 복의 결과 이게 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이라, 회당가서 랍비에게 자주 듣던 그 말 어쩐지 시시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머리속에 콱 박힌 "복의 대명사 복권" 요거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을 듣고 있던 군중은 대부분 히브리말도 아니고 헬라말도 아닌 아람어에 능한 사람들(아마 유대인)이 상당수였을 것이다. 아람어로 예수가 설파하는데 아람어 잘 모르는 사람, 글쎄 거기 일부러 찾아가서 연설 듣기 쉽지는 않았을 듯.

그들 사고체계는 회당에서 갈쳐주는 히브리성경과 미드라쉬 탈무드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모태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교해 보면 충분히 짐작된다. 산상 수훈을 듣던 유대인들은 필연 모태신앙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 - 유대교 회당에서 가르침 그대로이다.

화평을 깨러 온 자

그런데, 불과 다섯장 뒤에 나오는 예수 입을 통한 마태복음 저자의 표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된다 말한 예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안 식구'를 불화하게 하려 한다,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하여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선언한다.

이거 머여, 예수는 화평을 깨러 온 자,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란 거여 머여? 혼란스럽다.

독자께서는 오해하시면 않된다. 필자는 예수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은 없다. 대신,

마태복음 저자가 한심하다는 생각 뿐이다. 이 정도의 이야기 구성능력을 보인다면 필자라면 빵점 준다.

아니면 마태복음 원본은 정상였는데 누군가 후대에 손을 댄 결과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마태복음이라면 손을 댄 그 자의 이야기 구성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길.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I have not come to bring peace, but a sword.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For I have come to set a man against his father, and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nd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and one's foes will be members of one's own household.
마태복음 10장 (개역한글) Matthew 10 (NRSV)

기독교 교회당에 누군가에 의해 인도되어 가게되면, 멀쩡했던 그 집 구성원들은 원수가 될 터인데 화평대신 손에 검을 쥐게 된다.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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