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에서 슬퍼하며

이전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에서 마태는 호세아서 11장 1절을 하반절만 똑 떼어내 인용, 문맥을 놓침으로 히브리성경을 왜곡했음을 밝혔다.

이번 글은, 성경의 한 구절 전체를 인용한다고 해서 문맥에 맞는 인용이라 말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성경 한 절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이 쓰여지던 당시 시대상황과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여호와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즉 메세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 마태복음 2장

마태복음 2장 저자 마태는 히브리성경 예레미야 31장 15절 한 절을 통째로 인용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아직도 문맥을 놓치는 크나큰 의도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의도적인 실수"라는 필자의 표현에서 사과의 말씀을 기독교도들 여러분께 미리 드림이 옳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시면, 마태의 의도적 실수에 의한 히브리성경 훼손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러분이 들고다니는 기독교성경의 히브리성경파트(part of tanach) 예레미야가 마태는 틀리다 라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태복음 2장 (개역한글)

예수, 메시아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많은 사내 아이들이 학살되었다(마태복음 2장 16절). 안타까운 장면이다.

내 속으로 나은 아이들이 무참히 죽는 모습을 발을 동동구르며 지켜보는 보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미의 심정.

내가 만난 모든 기독교도들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교우들에게 조차 같이 아파하는 아름다운 심성의 소유자들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가지신 분들이다.

그런데 교회당 근처에 가기만 해도 이분들 이성은 완벽하게 마비현상을 일으키고 만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가까운 교우의 아들이 구세주 예수가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면, 여러분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이런 가사가 들어간 찬송가 부르실 수 있읍니까, 맨정신으로 ? 이성이 마비되지 않고서도요 ?

마태의 영아 학살 진술이 fact라면, 예수 사랑 진짜로 불편한 진실이다.

먼저 한글 성경 마태복음 2장 16절, 17절 그리고 18절을 꼼꼼히 읽어 마태의 속내를 알아보자.

예언과 성취 프레임

16절: 2살 아래 사내 아이들이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7절: 그런데 그 사건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했다.

18절: 예언 내용은 - 라마라는 동네에서 라헬이라는 여인이 슬피 울며 통곡한다. 왜 통곡하냐 ? 자식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볼수가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라헬이 거절했다, 자식이 죽었는데 무슨 위로가 되겠나 라는 뜻.

죽은 자식을 더 이상 볼수가 없으니 너무 슬퍼 라헬이 울었다 - 이 진술은 선지자 예레미야 예언을 마태가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과거 라마라는 동네에서 죽은 아들 때문에 울고있던 라헬이라는 여인과 베들레헴 근방에서 헤롯이 죽인 아들때문에 울고있는 어미를 마태는 예언과 성취 프레임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예레미야 31장 15절만 읽으면 "죽은 아들 때문에 라헬이 울고 있다는" 마태의 주장이 일견 그럴 듯 해보인다.

그러나 뒤따르는 예레미야 31장 16절 17절은 이러한 마태의 진술을 한방에 박살내버린다.

마태가 예레미야 31장 15절은 읽어 인용하면서, 16절 17절은 안 읽어서 내용을 모른다 ? 여러분께서도 그렇게 믿으시겠읍니까 ? 기독교도들 그 어느 누구라도 믿을 수 없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

라마에서 슬퍼하며 - 예레미야 31장

예레미야 35장 15절부터 17절까지 더 꼼곰하게 읽어 보자.

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예레미야 31장(개역한글)
15 Thus says the LORD: A voice is heard in Ramah, lamentation and bitter weeping. Rachel is weeping for her children; she refuses to be comforted for her children, because they are no more.Jeremiah ch. 31 (NRSV)

예레미야 35장 15절: 마태복음 2장 18절 그대로이다.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에서 "거절"이란 어휘가 매끄럽지 않다. 영단어 refuse 는 "사절, 사양하다" 뜻도 있으니, 위로를 사양하다, 즉 타인이 위로해주지만 그래서 고맙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내겐 의미가 없으니 나 좀 내버려둬 달라는 의미가 더 적절하다.

한마디로, 자식이 눈 앞에 없는데 어떤 위로도 위로가 아니된다는 뜻.(눈 앞에 자식이 없다고 해서 자식이 죽었다고 가정하지 말자 !!)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31장(개역한글)
16 Thus says the LORD: Keep your voice from weeping, and your eyes from tears; for there is a reward for your work, says the LORD: they shall come back from the land of the enemy;Jeremiah ch. 31 (NRSV)

예레미야 35장 16절: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현대 한국어 사용자로서 참으로 해괴한 번역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한다.

근데 찬찬히 음미해보면, "금하다" "금지하다" 암튼 어떤 것을 하지마라 부정의 뜻이니, 소리를 금하라, 소리를 내지마라, 소리를 내서 울지 마라 이 쯤 되겠네요.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눈을 금하다, 눈이 뭔가를 하게하지 마라, 눈에 눈물 맹글지마라, 맹근 눈물 흘리지 마라, 그러니까 눈물 흘리지마라 이쯤 되려나...

필자의 이러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 영어사람들은 어떻게 번역해놨을까 거기서 확인합니다.

영어 표현은 이러네요,,, Keep your voice from weeping 네 목소리가 울지 않게 하라 즉 울먹이며 말하지 마라,

(keep) your eyes from tears 네 두눈에(eyes 복수니까) 눈물이 있게하지 마라, 즉 눈물 흘리지마라,

그냥 울먹이지 말고 눈물 흘리지 마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표현이 의미 심장하다.

네가 (애걸복걸)한 일에 대해 보답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

대적(enemy)의 땅에서 돌아오는 게 보답이다, 뭐여 누가 돌아온다는 거여 ?

포로로 잡혀 적진(enemy)으로 끌려간 자식들이 돌아오는 것이 보답이란다. "여호와의 말이다" 라고 못을 박아버린다, 예레미야는.

읽는이가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래도 못 미더웠던지 예레미야는 17절에서 더 확실하게 매조지한다.

17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예레미야 31장(개역한글)
17 there is hope for your future, says the LORD: your children shall come back to their own country.Jeremiah ch. 31 (NRSV)

예레미야 35장 17절: 너희들 미래에 소망이 있다, 너희들 자녀들이 "자기들의 경내" 즉 고향 땅으로 돌아온다는 소망이다. 여호와의 말이란다 예레미야에 의하면.

결론: 마태복음 2장 구라

이제 분명해졌다, 마태는 2장 16절에서 여인들이 통곡한 이유가 죽은 아이들 때문이며 이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이 성취되었다고 예레미야 31장 15절을 통째로 인용했다.(예언과 성취 프레임)

그런데, 정작 예레미야는 죽은 아이들이 아니라 현재 포로상태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라헬 아줌마가 통곡했다고 예레미야는 극명히 밝히고 있다.

심지어, 여호와는 울고있는 여인에게 소망을 준다, 반드시 그들이 고향땅에 돌아 온다고 예레미야는 기록했는데... 마태 당시의 헤롯이 죽인 아이들은,, 돌아오긴 하려나 ??

마태의 cherry Picking, 무슨 말 한마디라도 저 좋은 것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퍼왔음을 또 다시 확인한다. 필자는 단언한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이것이 훗날 성경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엉터리 글짖기를 비싼 파피러스에다가...

결론, 마태복음 2장 구라 fr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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